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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시 한 편 쓰고 나서 / 이영식

가짜시인! 2013. 7. 9. 19:26

시 한 편 쓰고 나서  

                          이영식

그리고 나서, 창밖을 보았다
낮달이 거슴츠레 눈뜨고 매달려 있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본 품새일까
한겨울 목련나무도 솜털 눈 비벼가며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책상 주위를 둘러싼
공간, 모든 사물들도 주목하고 있었다
내가 끙끙거리며 방안을 맴돌 때
컴퓨터 자판 소리만 불규칙하게 반복될 때
나를 주시했던 모두가 한숨 내쉬며
함께 끙끙 거렸나보다
퇴고 후 다시 촘촘히 읽어 보니
우발적 전개가 많다
처음 의도에서 꽤 벗어나 있었다
글자와 글자,
행간과 행간 사이
사물들의 숨결이 스며들었나보다
그들의 말이 섞였나보다
묵은 젖 빨듯 시 한 편 겨우 쓰고 나서
발치의 개미 한 마리 몸짓까지
환히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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