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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본문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가짜시인의 단상
예전에 읽었던 시를 오늘 다시 꺼내 몇번을 다시 읽다가 '흐린 주점'에서 생각이 자꾸 머무른다.
시인은 왜 흐린 주점이라 했을까? 흐리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곰곰 생각해 본다.
살아온 그의 생이 흐릿하고 연거푸 마신 몇잔의 소주에 지금, 정신이 혼미하고 살아내야 할 미래가 혼미하다는 것일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늙어가는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자신을 돌아다 볼 것이다.
살아가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허물어 버리고 싶은 생이지만 그런 폐인이 되겠지만 시인은 견딜수 있음을 강하게 긍정하고 있다.
시 전체에 흐르는 '바깥' 이라는 말과 '생' 이라는 말.
자신의 삶(생)이 언제나 중심에 자리잡지 못하고 바깥에서 맴도는 것 같은 느낌, 그 고단한 외로움.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이 항상 함께하는 삶이지만 자주 소외되고 경계에서 밀려나 있다는 생각에 철저히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흐린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는 어느 주점에서, 혼자서, 그는 지금 견디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아름다운 폐인이 되어서 말이다.
술잔 앞에서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아마도 그는
'그렇다'라고 결연히 답하고 일어섰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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