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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간장 / 하상만

가짜시인! 2012. 11. 9. 16:41

간장  

 

 

               하상만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낸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다는 것을 
 
방에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그런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 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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