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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병 / 이경림 본문
빈병
이경림
집으로 가는 길, 담 모퉁이에 기대어 있었다
녹색을 입고 있었지만 빈속이 다 보였다
골 뚜껑을 환히 열어놓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속이었다
몇몇의 눈발들이 기적처럼
그의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는 너무 깊어진 생각 때문에 몸이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속엣것을 다 쏟아내 너무 허한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저 아득히 저 너머로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
예정된 무슨 운행처럼
나의 두 발이 교차하며 그의 앞을 지나왔다
마치, 그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거슬러 와
그토록 빈 병이 되어서 서 있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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