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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뒷문을 읽다 / 이루시아

가짜시인! 2012. 10. 26. 08:24

뒷문을 읽다

 

                            

                        이루시아

 

                

그늘 한채 들이고 우묵하니 깊어진 뒷문의 표정을 읽다가

저만큼 깊어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의 물살을 견뎠을까

쓸리고 깎여서 둥글게 마름질된 마음이 우려낸 빛깔들은

또 얼마나 많은 무늬들을 품었을까 생각했다

 

바람이 대필해 놓은 문장들 빼곡한 문살의 틈 좀 봐

꼬리쳐진 고양이의 늘어진 허기 때문에

역류한 꿈 받아 안고 힘겨운 고무대야 블그죽죽한 몸살기 때문에

장독대 옆에서 멈춘 세발자전거 페달이 더 이상 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벽돌 사이 몸키우는 담쟁이의 길이 너무 가파르다는 생각 때문에 등등......

이런저런 걱정에 잠 못든 흔적 역력해

 

도면을 펴봐

빛의 통로를 북쪽으로 낼 수는 없을까

젖은 뒷문의 등 말려주고 돌아나가는 빛의 샛길 하나 트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일년생 감나무 오른팔이 얹힐 만큼 담장도 낮췄으면 해

시야가 넓어지면 모퉁이 길에 피고 지던 들꽃의 이름 기억해낼지도 몰라

그리고 잠시 환하게 웃을지도 몰라

지친 뒷문에게 위로를 부탁해

 

 

 

[2012 미네르바 여름호 신인상 당선작]

 

 

♥가짜시인의 단상

 

쉽게 지나쳐버릴수 있는,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대상을 시인은 보고 있다.

감정이 없는 사물에 감정을 얹고 그 감정과 소통하는 시인의 마음이 따습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란 결국 뒷문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빛을 들일수 있는 샛길을 터주고

마음의 담장을 낮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