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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끈 / 최호일

가짜시인! 2012. 10. 23. 13:58

개 끈

                 최호일

빈 봉지로 배불러 가는 라면 집 쓰레기통처럼
늦은 폭설이 허기진 개밥그릇에
허드레 눈덩이를 곱배기로 던져 넣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내 발목을 물어뜯던 것들
개는 싱겁게 하늘을 보고 짖어대지만
라면은 죄송하게 젓가락까지 짜다
내 호주머니가 그런 것처럼
개밥그릇도 짭짤한 하루를 좋아할 것이다
쭈글쭈글한 공복이 개밥그릇 속에서
찬밥덩이를 흘리면서 받아먹고 있다
한 숟가락만, 감나무 가지가 손 내민다
땡볕이 주렁주렁 달라붙는 여름날에는
감나무는 그늘을 깔고 개를 달게 키울 것이다
눈 더미가 쌀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가
뼈까지 녹아 버릴 때
개는 밥그릇을 엎고 부들거릴지 모른다
그러나, 직장이 내 따뜻한 끈이었던 시절처럼
개 끈은 당분간 개를 보호할 것이다
개가 끈을 끌고 가기도 하고
끈이 개를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개 끈의 길이만큼 간섭하고
개 끈의 길이만큼 용서할 것이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넥타이들을
눈보라가 하나씩 잡아끌고 지나간다
집으로 가는 길이 하얗게 지워지는 동안
라면은 국물과 뼈다귀까지 주름지고 있다

멍멍, 하고 밥이 다가 갈 때쯤
개의 절반이 꼬리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마당의 절반쯤, 희망에 묶여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