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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별자리

가짜시인! 2018. 8. 6. 14:05

별자리

 

 

1

고향 집 어귀 삐뚜름한 복숭아밭에 

붉고 선명한 별자리가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한끝을 힘껏 당겨서 

대문 앞 삽자루에 묶어 놓았는지

별들의 간격 사이에 향기가 팽팽하다

 

실직 이후 섭섭게 팔려간 저 밭뙈기가

가난한 식구들의 몇 계절을 일구는 동안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복숭아나무를 심을란다 어메가 참 좋아하셨지’

 

흙도 한 줌 없는 마음 밭에는 올해도

헛꽃만 피었다 지고 있었다

 

2

모깃불 연기가 구수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누워 거문고자리 돌고래자리를

손가락 그림으로 그려 주었고 할머니 옆구리에

기대앉은 나는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꺼내 

공중에 그려놓은 별자리를 본뜨는 여름이었다

 

아들보다 자주 본다는 읍내 의사는

할머니가 복숭아밭에서 키운 것은 별이라 했다

땅에서 하늘을 경작하는 일을 치매 농법이라 하였고

노구에서는 이제 별의 향기가 난다 하였다

 

할머니의 거처를 복숭아밭으로 옮기는 날 

나는 하늘에 별자리 하나를 새로 그려 넣었고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에 묏자리를 그려 넣었다

빚이 반, 밭 주인 인정이 반인 좁은 거처에  

옮겨온 별의 향기가 파다하다

 

'올해는 복숭아가 풍년인 갑다'

 

아버지 목소리가 환한 별자리를 헤치며 

우주의 귀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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