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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인생 양념들/경주 (35)
하루하루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1970년대 찍은 경주 황룡사터 건물터 발굴 현장. 문화재관리국이 조사단을 꾸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2만평 넘는 대사원터를 발굴조사한 것은 국내 고고발굴사상 전례 없는 대역사였다. 왜 궁궐로 짓다가 거대한 절이 됐을까. 신라 천년 도읍 경주의 옛 도심 구황동에 2만평 넘는 터만 남긴 채 사라진 거대사원 황룡사 유적을 답사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의문이다. 황룡사는 한반도 역사에 등장한 역대 불교 사찰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절이다. 백제 장인 아비지가 세운 80m를 넘는 목탑과 본존불 장륙존상, 화가 솔거의 벽화로 유명했던 이 절터는 진흥왕 14년인 553년, 왕궁인 월성 동쪽의 광활한 저습지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인근의 좁은 반월성 궁성에 덧댄 새 궁터로 짓기 위..

[단독] 1400년전 경주판 '광화문 광장' 황룡사 앞에서 찾았다..7600평 규모, 월지까지 이어져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20.07.22. 09:27 수정 2020.07.22. 10:48 댓글 100개 [경향신문]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 터 남쪽 구역에서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1600년전 신라 광장이 확인됐다. 동궁 및 월지까지 500m(폭 50m)가량 이어진 이 광장의 규모는 2만5000㎡(7600평)에 달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신라시대 최대의 사찰이던 경주 황룡사터 남쪽에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대규모 ‘광장’이 존재했다는 조사성과가 정리되어 발표됐다. 이 광장은 담장과 함께 황룡사에서 동궁 및 월지 방향으로 500m 가량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동궁 및 월지(서쪽)와 명활..
https://news.v.daum.net/v/20190411111256637?rcmd=rn 1000년 고도 경주 월성의 연못터에서는 무엇이 쏟아져나왔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 선임 기자 입력 2019.04.11. 11:12댓글 8개 The copyright belongs to the original writer of the content, and there may be errors in machine translation results. 版权归内容原作者所有。..
"황룡사는 신라의 국가사찰, 고려의 호국사찰" 입력 2018.06.11. 06:00 국립경주박물관, 9월 2일까지 '황룡사'展 황룡사 목탑터 심초석 뚜껑돌.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신라 3대 보물 중 하나인 진평왕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찾고자 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이..
천년 넘게 엎어져 있는 '경주 남산 마애불' 원위치 찾는다(종합) 입력 2018.03.04. 16:07 수정 2018.03.04. 16:07 1천 년 넘게 엎어진 채 땅을 보고 있는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 통일신라 마애불상의 원위치를 찾는 연구가 이뤄진다. 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남산 열암곡 마애불의 원위치와 방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