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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오독 가능해야 좋은 시

가짜시인! 2018. 9. 5. 08:59

“창조적 오독 가능해야 좋은 시”

[문학뉴스=하재일 편집위원]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것만 서정시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죽이고 싶은 자를 죽이고 싶어 하자’도 서정시이다. 분노와 상처받은 마음이 가감 없이 거칠게 드러난 것 역시 서정시다.”

 

(김영승 시인이 ‘일파만파 낭독회’에서 자신의 시 ‘반성’을 낭독하고 있다.)

 

연작시 <반성>으로 유명한 김영승(59) 시인이 일산 ‘이듬책방’에서 열린 ‘제22회 일파만파 낭독회’에 참석해 자신의 대표시 <반성>을 낭독한 뒤 독특한 시론을 전개했다.

 

김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성’의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서정시의 주된 맥락에서 ‘반성’은 아주 미약한 지류에 불과하다”고 운을 떼었다.

 

(입추의 여지 없이 이듬책방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

 

그는 “서정시란 개인의 주관적이고, 특수한 정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시이며, 보편타당한 사실을 담고 있는가와는 상관이 없다”며 “성경의 욥기나 시편 아가서 등도 넓게 보면 서정시의 원류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김영승 시인은 이어 “본인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는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며 “윤동주의 ‘서시’가 관념이 아니라 시일 수 있었던 것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마지막 구절로 ‘시인이 서있는 자리’(now and here)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시인은 토머스 칼라일과 오스카 와일드 같은 작가들은 예수를 시인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현주소 위에 서서 발언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저 들에 백합화를 보라. 걱정으로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오늘 걱정은 오늘에 족하다’에서 그쳤다면 이는 경전에 불과했겠지만, 혁명가 예수는 한 발 더 나아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라’로 방점을 찍으면서 로마의 압제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고발했기에 그의 말은 시가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같은 맥락에서 “더러 나의 시에 대해 분단된 조국에 대한 사유가 없다는 비판을 하는데, 그건 내가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감정들, 구체적으로는 내가 느끼는 욕망과 절망, 그리움을 시로 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시인은 또 “창조적 오독이 가능한 시야말로 좋은 시”라는 독특한 시관(詩觀)도 밝혔다.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 들여져야 좋은 시이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받아들이는 시란 시가 아닌 ‘짧은 글짓기’에 불과하다”는 것.

  

김 시인은 이날 낭독회에서 반성100, 반성604, 반성745 등 자신이 아끼는 대표적 시편들을 낭독한 뒤 하모니카 연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낭독회에는 시인, 작가 및 문학애호가 3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인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영승 시인은 1986년 『세계의 문학』에 ‘반성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0년대 현실을 특유의 해학으로 극복한 그의 연작시 ‘반성’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시집 <반성>(1987)을 출간한 후 <취객의 꿈>(1988), <아름다운 폐인>(1994), <몸 하나의 사랑>(1994), <권태>(1994),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2001), <화창>(2008), <흐린날 미사일>(2013) 등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불교문예작품상 등을 수상했고 2013년 지훈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