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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시인을 찾아서 – 유홍준 시인 본문
<이 시대의 시인을 찾아서 – 유홍준 시인>
유홍준 시인
비 내리는 날 흰 진주를 줍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막 뽀얀 꽃잎을 펼친 목련 위로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아스팔트 바닥에는 셀 수 없는 둥근 파문들이 번지고 또 번진다. 익히 들어왔던 파문처럼 번져 온 남쪽 나라에 산다는 시인의 소문을 따라 길을 나섰다. 먼 진주에 산다는 유홍준 시인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책상물림이나 하는 보통 시인들과는 사뭇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다. 비 내리는 차창 밖에는 어느 우주를 떠돌다 온 별무리가 왈칵 쏟아져 노란 개나리로 피어 있다. 시를 쓰는 일은 이렇게 길 잃고 떨어져 내려 꽃이 된 별을 찾아가는 일인 것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막상 손에 잡히지는 않는 갈증을 머금고 남쪽으로 달린다.
어탕집에의 만남
버드나무처럼 아무 곳에나 픽 꽂아 놓아도 산다는 그 여자가 종일 비를 맞으며 어탕을 끓인다는 그 집에 찾아들었다. 비는 하염없어 빗줄기 속에서 잠시 길을 잃기도 하다가 우산을 쓰고 기다리고 있는 시인을 만났다. 오래 알아온 사이처럼 털털한 시인과 인사를 나누고 유쾌하고 편안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런 봄에는 나물 뜯으러 가는 것이 최고인데 이리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그것도 못하고 뭘 해야 하나 난감하다는 시인의 너스레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어탕은 창밖의 빗소리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한 그릇씩 붉고 뜨거운 어탕을 나누면서 방금 만난 어색함을 녹인다. 필자는 비린 것 싫어하는 속내를 미처 다 숨기지 못하고 어탕에는 손도 못 대고 아닌 척 무진장 애를 쓰기도 했다.
시인은 2013년 제28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으며 여러 지면을 통해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집중조명을 받았었기에 시인의 내력은 얼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시인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과 시를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시인 또한 전혀 거리낌 없이 대화를 해 주셨다. 우리 일행도 편하게 마음을 활짝 열고 시인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시인이 운영하며 지도하고 있는 푸른시인학교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엷은 분홍 벚꽃이 공중에 매달린 채 비에 젖고 있다.
아담하고 조용한 곳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이 끓고 시인은 손수 목련차를 우려 주었다. 입술로 만나는 목련의 느낌이 아주 특별했다.
북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많으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데 고향과 어린 시절의 모습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시를 쓰고 보면 유독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의도적으로 죽음의 이야기를 피해보려고도 한다는 시인의 시 「목기에 담긴 밥」을 전영아 낭송가가 낭송했다.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이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밥을」전문
물론 아버지나 집안 어른들의 죽음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형의 죽음 때문에 죽음에 많이 시달린 거 같아요. 저수지에서 수영하다 형 친구는 살고 형은 잘못되었지요. 마루 위에 눕힌 뒤 덮어준 이불의 목단꽃 무늬의 붉은색만 어렴풋이 기억나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 간에 형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건 무언의 금기였어요. 모두 모른 척 해도 형 친구를 볼 때면 생각이 났지요. 벌초하러 가면 아버지가 낙엽송 밭으로 들어가 눈이 벌개져서 나오셨는데 그곳이 형 무덤이구나 생각했어요. 그 이후 저수지에 가면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어요. 소 풀 먹이러 갈 때면 그 저수지를 지날 수밖에 없었는데 물비늘이 일면 현기증이 나고 우리 집 송아지가 빠져 죽을까봐 공포를 느끼곤 했는데 그게 잠재의식에 각인된 죽음이라는 공포가 물이라는 대상을 통해 나타난 거 같아요.
양수를 뒤집어쓴 송아지 갓 태어난 송아지가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머릿
수건을 쓴 어머니 걸레를 든 어머니가 갓 태어난 몸뚱어리를 닦아주고 양낫
을 든 아버지 기분이 좋은 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스윽스윽 소의
태를 잘라 소에게 던져주고 찔끔, 새끼를 낳은 소 눈물을 흘리던 소가 우걱
우걱 제가 낳은 태를 제가 씹어 삼키고 지푸라기 묻은 태반(胎盤)을 씹어 삼
키고 어머니는 황급히 아궁이에 불을 넣고 소의 태반 붉은 소의 태반을 씻어
안치고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는 쟁반 구수한 고기냄새가 올라오는 쟁반을
들고 오고 오후의 마루 햇살 노란 오후의 마루 끝에 앉아 어머니와 아버지와
나는 기름진 것 기름지고 구수한 것을 소금에 찍고 산사태 났던 앞산 언덕배
기 새끼 내지른 궁뎅이 처럼 움푹 꺼진 앞산 언덕배기에 태반처럼 붉은 복사
꽃이 피어오르고
-「붉은 태반」전문
이 시는 태반을 먹던 어릴 적의 기억이 그대로 시가 되었어요.
실제로 소가 새끼를 낳으면 이렇게 태반을 쪄서 먹었어요. 우리 집이 서향이라 해질녘 마루 끝에 앉으면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이 들곤 했어요. 우린 가족 간에 별로 말이 없었고 저도 말 없는 소년이었지요. 어느 땐 하교한 뒤 어머니가 김을 매고 있으면 입이 안 떨어져 말을 못 걸고 1시간 동안이나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말 안 하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요. 한 친구가 우리 집에 와 보고는 다시 안 오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전부 숨도 안 쉬고 사는 것 같다고. 지금도 그 분위기는 여전해요. 자라면서도 원체 말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아파서 일 년의 반은 병원에 계셨고 집안 형편은 어려웠고 왜 태어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어떤 정체모를 한스러움이 있었어요. 멀리 지리산 자락을 보면서 혼자서 그 한을 토하곤 했었지요.
예전에 어머니가 콩을 심는 방법 중에 ‘발콩’이라는 방법이 있었어요. 밭에 발뒤꿈치로 작은 구덩이를 만들고 콩 너 댓 알을 심고 흙으로 덮고 또 발뒤꿈치로 파고 심고 덮고 그 동작을 지그재그로 반복했는데 그게 마치 스텝을 밟으면서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그걸 가만 생각해보면 사람의 발자국마다 콩이 자라는 것이에요. 한 발마다 싱싱한 콩이 자라나오지요. 시도 우리가 살아가는 발자국마다 자라는 것이지 않을까요. 우리 살아내는 걸음걸음이 바로 시 아니겠어요. 전 삶을 떠난 시는 있을 수 없다고 봐요.
황봉학 시인과 유홍준 시인
그럼 어린 시절의 불우와 한이 시를 쓰게 하는 것인가요
전 어린 시절의 불우는 누구나 비슷하다고 봐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더 크게 상처로 기억하고 못 잊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우이고 툴툴 털고 지나가버리는 사람에게는 별 일이 아닌 것이 되지요. 어떤 사건이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불우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고통의 총량은 거의 비슷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그 사람의 고통이 시인을 만들었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 시인이라고 더 고통스럽다는 말은 안 맞는 말인 거 같아요.
결국 시라는 것은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고 시는 머리로 가슴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손끝으로 쓰는 것이에요. 언어에 대한 감각과 대상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감수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감동 받아 우는 사람이 있고 멀뚱히 듣는 사람이 있듯이 그것이 불우이든 삶의 고통이든 쓰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쓰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힘든 직업을 가지고 살아오신 것으로 아는데 남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직업들이 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참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어요. 19살에 한복집 시다부터 가락시장에서 장돌뱅이도 하고 결혼 후 부산에서 1년 동안 밀링 일을 하기도 했지요. 나무를 다루는 일은 참 좋아하고 잘 하는데 쇠 깎는 일은 제겐 좀 맞지 않았어요. 쇠의 느낌은 싫더라구요. 그러다 대구로 와 야채 행상도 했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됐어요. 영양으로 옮겨 거기서는 돈벌이 되는 일은 다 했지요. 마른 고추 구매에 농약치기, 시멘트 하차하기, 제방 쌓기, 소금포대 내리기 참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산판일이 그 중에서 가장 오래 한 일이에요. 산판일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죠. 그 당시 제가 57킬로그램 정도 밖에 안 나갔는데 100킬로그램 정도의 나무도 거뜬히 날랐으니까요. 나무를 얹은 어깨가 파지고 거기에 또 올려 파지고 그렇게 하다 계란 하나 들어갈 만큼 움푹 파져야 진정한 산판꾼이다 라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세상의 어떤 힘든 일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어져요. 일 하다가 나무에 치여 죽는 일도 많았으니까요. 고통에도 무감각해지고 노동의 강도가 워낙에 세면 세상의 규칙이라던지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지기도 하지요. 그렇게 영양에서 3년 동안 생활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진주로 와서 제지 공장 일을 하다 정신병원 보호사 일을 만 3년 했어요. 120명의 환자들을 관리하며 어려움 점도 있었지만 한 판 잘 놀았지요. 산책도 나가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그렇게 지냈어요. 폐쇄병동 환자가 창밖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곰곰 생각하기도 했어요. 가끔은 그들의 자리에 가서 누워보기도 하고 세상과 어긋나 들어온 그들에게도 또 그들만의 세상이 있음을 보기도 했지요.
누가 내 얼굴에 자꾸
혈서를 쓰려고 해요
폐쇄병동 서부기 씨가 속삭여준 말이다
이 말을 갖고
두어 달
나는 세상의 얼굴을 살핀다
(일용직 노동자의 얼굴엔 일용직 노동자의 혈서가
백화점 점원의 얼굴엔 백화점 점원의 혈서가 쓰여 있다)
얼굴에 혈서가 쓰인 사람들이
저 문으로 들어가고
저 문으로 나가고
하루 종일
나는 수백 개의 얼굴, 수백 권의 혈서를 읽는다
누가 내 얼굴에
자꾸
혈서를 쓰려고 한다
-「혈서」전문
그리 온갖 일하며 살다가 시를 쓰고 시인이 되고 오늘 이런 분들을 만나고 이게 기적 같은 일이지요. 돌아보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다시 만난 전 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고등학교 때도 문학잡지도 민음사 총서도 읽고 했었지요. 강은교 마종기 등의 시인들에게 심취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고교 졸업 후에는 돈을 벌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지요. 우연히 공단문학상에 소설이 당선 되고 개천예술제 입상 후 김언희 선생님을 만난 이후에는 그야말로 쎄가 빠지게 공부했었지요. 공장 일 이후 시간은 무조건 돌아와 책 보고 시만 썼으니까요. 7년의 시간 동안 1000여 편의 작품을 썼어요. 등단을 하고 청탁이 왔을 때 미리 써 놓은 작품이 많으니 밑천이 두둑했어요. 아무래도 청탁 받은 후에 쓰면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작품을 못 쓰죠.
작품의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으시는지요
소재는 아무데서나 보이는 것이 소재에요. 자꾸 쓰면 자꾸 생기고 안 쓰면 안 생기는 게 소재에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마흔만 되어도 그만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 모두가 다 시의 재료이지요. 하지만 결국 읽어야 써지는 것이 시입니다. 안 읽으면 시가 안 써지죠. 끊임없이 읽다 보면 어떤 한 문장 어떤 한 단어에서 촉발되어 나도 쓰게 됩니다. 그럴려면 내 감각이 예민해져 있어야 하지요. 즉 성감대가 예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반응이 와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모두 불감증에 걸려 있어요. 웬만큼 건드려도 반응이 잘 안 오는 거 같아요. 예민해져 있으면 살짝만 건드려도 저절로 흥분하게 마련이에요. 일단 흥분을 해야 오르가슴에 다다를 가능성이 생기죠. 다른 이의 작품을 읽는 것은 그것을 통해 배우려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그와 다르게 쓰기 위해서 읽는 거에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부분을 내가 보아내는 거죠. 그래서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읽으면 써집니다.
어쩌면 삶은 안 깨달으려 발광을 해도 살다 보면 부딪치는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아지게 마련입니다. 시 안 써도 나이 들면 이치가 알아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인은 깨닫기는 하지만 그걸 언술로 말해버리면 안 됩니다. 독자 스스로에게 느낄 기회를 주어야지 시인이 이미 다 득도한 모습을 시에 나타내면 읽는 이는 김이 새고 재미가 없지요. 읽는 이에게 깨달음을 줄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고, 시인의 체험을 통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유홍준 시인과 작가사상 편집위원들
문학에서 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전 시도 욕망하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를 얼만큼이나 욕망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적당히 놀 거 다 놀고 할거 다 하고 어떤 성과를 바란다면 그건 어불성설이에요. 김이듬 시인과 자주 만나는데 김이듬 시인이 시를 어느 만큼 욕망하는지 한 번 보세요. 어쩌면 무모해 보일만큼의 욕망, 그게 있어야만 시라는 것에 닿지 않을까 싶어요. 끼라는 말도 결국 그 욕망의 다른 말로 보면 됩니다. 다른 건 다 버려도 그만인 시 앞에서 그만한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시는 에너지의 문제이고 돌파하고자 이루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곧 시가 되어서 나옵니다. 끊임없이 시를 이루고자 욕망해야 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뜻을 모르겠고 무슨 의도로 썼는지 짐작이 힘든 시들도 많은데 이런 독자를 괴롭히는 시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시는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는 느끼는 것이지요. 서정시의 작법 원리가 응축이라면 현대시는 치환입니다. 변주하니까 이해의 어려움을 조금은 겪는 것입니다. 클래식은 다 이해하고 못 알아들어도 작곡가를 욕하지 않는데 왜 시는 모두가 다 이해되어야 합니까? 시도 못 알아듣는 시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는 나를 타자화 시키는 일입니다. 그만큼 거리감이 생기니 나를 대상으로 하는 서정시보다 이해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내가 알고 있는 시에 대한 이론과 범위로만 그 시를 재단하려고 하니까 그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제게도 어려운 텍스트가 있긴 하지만 보통 독자들이 어렵다고 하는 시들이 전 참 재미있습니다. 전 서정시를 쓰지만 황병승, 김행숙, 이수명 시인의 시들이 더 매력 있고 재미있습니다.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없는 어떤 끌림이 있습니다. 그 시가 끌어당기는 어떤 힘에 의해 나도 시를 쓰게 됩니다. 하지만 쉬운 시들을 읽으면 쉽고 따듯하고 좋기는 한데 내 시가 촉발되어 나오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즉 자극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기질은 읽는 이의 내면에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시를 쓴다면 그 반대의 시들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형태의 시만 계속 읽으면 그 시에는 긴장감이 떨어져 버립니다. 내가 서정시를 쓴다면 모던한 시를 읽어야 내 시에도 텐션이 생깁니다. 서정적인 내용을 쓰되 풀어가는 것은 현대적인 기법을 쓴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변별력이 생깁니다.
나는 뛴다 머리통을 들고 뛰어온 너에게 머리통을 받아들고 뛴다 이
둥근 바통을 누구에게 건네주어야 하나 아무도 없는 트랙을 뛴다 밥의
트랙 눈물의 트랙 한숨의 트랙 벗어나서는 안 되는 트랙을 나는 뛴다 머
리통이 식기 전에 눈알이 굳기 전에 누구에게 이 골칫덩어리를 건네주
어야 하나 나는 트랙을 이탈한다 흰 트랙으로부터 탈출한다 무단횡단
을 한다 나는 이면도로를 거꾸로 뛰어간다 나는 젖이 큰 여자 젖이 퉁퉁
불어 있는 여자를 찾는다 머리통을 받아들고 앞섶을 풀어제치고 젖을
먹일 여자를 찾는다 트랙이 어느새 나를 쫓아와 있다
「릴레이」전문
저는 기표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서정시를 많이 읽다보면 좀 싱겁고 심심한 느낌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쓰면 극복할까 해서 기표놀이에 주목을 했습니다.
쉽게 쓰는 것은 쉽게 읽히기는 하나 뭔가 다른 이와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작은 인테리어 소품 하나를 만들어도 남과 다르게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가 남의 시를 많이 읽는 것은 그 시처럼 안 쓰려고 읽는 것입니다. 옷을 만들 때 시장조사를 하고 사람들이 입은 옷을 많이 관찰하는 이유는 똑같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조금의 어려움을 즐기는 게 바로 시 읽는 재미죠. 닮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읽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 것만 계속 쓰면 되겠죠.
생활고에 시달리며 시의 무용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으셨는지요
돈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별로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만 보통 사람들도 가족과 잘 지내기가 쉽지는 않은 일인데 제가 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면 가족들과 덜 소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시 안 쓴다고 돈벌이를 더 잘했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다 싶어요. 시 안 썼으면 오히려 놈팽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죠. 시에 함몰되어 허튼짓은 안 하고 사니 오히려 다행이지요. 시를 통해서 이름을 얻고 성과를 내고 하는 것이 사실은 별거 아니에요. 기를 쓰고 이름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면 이룬 자의 배부름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그거 있으나 없으나 별로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동안 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다 해도 크게 돈에 구애를 받거나 집착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저런 어려움이 늘 있어 왔지만 그게 아주 힘들거나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남과 완전히 분리해서 해탈한 경지는 아니니 남과의 비교에서 조금의 분노가 생기기도 하지만 꼭 해외여행 가고 명품 쓴다고 더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안 되면 TV 보면 되죠. 차를 좀 수리해서 타야 하는데 당장 고칠 수 없어 그냥 타는 그 정도의 불편함 그것뿐이에요. 동창회나 불필요한 모임은 안 가면 되고. 모든 건 하나의 선택의 일일 뿐이에요. 돈 많은 사람이라고 안 싸우고 안 불행하나요. 오히려 돈 많고 부자인 사람들이 더 싸우고 더 불행하지요. 나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 이정도면 잘 누리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엄정옥 시인과 유홍준 시인
시의 오르가즘을 느끼는 법을 터득하라
시를 가르칠 때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은 배우기가 더 어렵죠. 자기가 그려놓은 밑그림을 안 버리려고 하기 때문인데 전 가혹하게 가르칩니다. 안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쓸 거 같으면 뭐 하러 배우러 오나 싶구요.
시라는 것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느는게 아니라 불쑥 늘어나는 것이죠. 시가 계속 안 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성장해 있는 것이 시입니다. 멀리뛰기가 아닌 제자리높이뛰기이지요. 시를 써 나가다 내가 어쩌다 이리 높게 뛰었는지 나도 모르게 놀라는 때가 오기도 합니다. 그게 한두 번씩 반복되다 보면 어떻게 해야 느는지 스스로 터득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 오르가즘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지도 중에 계속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에게는 유행가 가사를 들어 보라고 합니다. 유행가 가사는 소통을 목적으로 쓰여진 거라 혼자만의 자폐로 빠지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옷을 입으면 거기에 맞는 액세서리를 하는 게 당연한데 맞지도 않는 내용을 써서 우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를 써서 다른 이에게 보이고 공유를 하려고 하면 보편성 위에서 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누구나 좋아하는 옷을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시도 무난한 것을 쓰되 너무 평범한 것은 개성이 없으니 자신만의 개성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되었을까. 이것도 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업에다 또 업을 얹는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이왕 나섰으니 가야지요. 산문이 걷는 거라면 시는 사실 춤이에요. 춤은 방향이 없어요. 그러니 시는 얄궂은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런 무정형이 또 재미가 있습니다. 그저 이렇게 가는 수밖에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자 했으나 시인은 이 말로 그 질문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정해진 방향 없이 몸에 실려서 나오는 춤처럼 시도 애써 만들려고 하지 않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갈 수 밖에 없는 일인 것 같다. 다음 생, 그 다음 생에도 그 업을 청산하고자 또 다시 시를 쓰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작가사상 편집위원 (좌측부터 황봉학, 전영아, 김동희, 정종열, 엄정옥, 권희순)과 유홍준 시인
인터뷰 정리 - 엄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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