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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예지와 시인의 기이한 관계 / 이승하

가짜시인! 2013. 9. 24. 18:29

문예지와 시인의 기이한 관계

 

                                                                                                                       이승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단을 보면 시가 죽었고 시인이 죽었고 시집이 죽었다. 암담하기 이를 데 없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같은 일간지에서 매일 시를 소개하는 것이 시 독자 저변 확대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진단 정도만 해도 이 글은 소임을 다한 것이리라.

 

  1. 새롭게 씌어질 시문학사를 위하여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를 기점으로 삼는다면 우리 현대시의 역사는 이제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0’이라는 숫자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한국시문학사가 새롭게 정리될 시점에 이른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시문학사를 누가 기술하든 영광의 월계관보다는 상처의 가시관을 더 크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된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국권을 몽땅 빼앗긴 일제 강점기의 초기에 울분에 사로잡힌 청년들이 모여 동인지 시대를 열었다. 그 이후 서구시의 모방과 주체적 시 쓰기의 갈등을 유발한 모더니즘의 세례가 있었다. 그 대척점에 계급문학을 내세운 카프의 조직과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해체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 5~6년 동안은 일본의 침략 전쟁을 고무 찬양하는 친일문학의 극성기였다. 광복 이후에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심하였고, 민족의 대이동에 따라 문인도 남과 북 가운데 하나를 택해 새롭게 둥지를 틀어야만 했다. 택일을 잘못했기에 다수의 문인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문인은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써야만 했다.

 

  분단된 이후 북한의 문인은 세습 왕조체제 아래서 반미사상과 주체사상을 드높이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다. 남한의 문인은 연이어 나타난 독재자 밑에서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하거나 순수서정시의 그늘로 숨어야 했다. 남한의 문인 중 419와 516, 1026과 1212사태, 518과 629 같은 날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완전히 담을 쌓고 학 같은 자세를 보여준 시인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 이 땅의 시인들은 작품에다가 그런 것에 대한 견해를 담아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을 예의 주시하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시를 써야만 했다. 80년대 민중 문학의 맹장들은 목소리를 한껏 높였으나 90년대 들어 냉전 체제가 무너지자 대다수의 맹장은 문학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파란 많은 한국의 역사와 맞물려 흘러온 한국시문학사는 지금 어디에 이르러 있는 것일까.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문학이 휘둘리게 된다. 이른바 영상문화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 동영상을 보여주는 인터넷과 휴대폰이 우리들의 생활 한복판에 뛰어들어 문학의 근간인 활자를 마구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통신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세대에게 시란 갑골문자 같은 것이다. 정통문학권의 시집은 도통 팔리지도 않고 문학적 담론도 형성하지 못하는 데 반해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집은 여전히 낙양의 지가를 올리며 승승장구,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또 하나의 희한한 현상이 나타났다. 문학 독자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예지가 엄청나게 발간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 독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예전에는 독자였던 사람들이 작품을 읽지는 않고 스스로 쓰려고 하는 것이다. 등단자의 수는 문예지의 쇄도 속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들은 읽지 않고 쓰는 자가 되었다. 또 한 가지는 인터넷 세상으로 뛰어들어 유영하다 보니 문학이란 것 자체를 전근대적인 의사소통 방법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영화음악스포츠온라인 게임환경 운동 등 자본주의의 논리와 무관할 수 없는 다른 분야로 이동해간 것이다. 시대 상황은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자, 이러한 때에 시인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는 시인의 등단과 등단 이후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어느 독자의 항변

 

  나는 최근에 송점수라는 자유기고가가 쓴 글을 읽고 망연자실한 적이 있다. 제목은 ‘쓰레기 같은 글과 글쟁이가 춤을 춘다’인데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들을 파헤친 대한민국 보고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하이비전, 2003)라는 책에 실려 있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기가 일하는 분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곳의 부조리를 비판한 글을 모은 것으로서, 일종의 ‘사회고발서’이다. 송점수 씨가 쓴 글은 문장도 무척 거칠고 논리도 정연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글 가운데 일리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이 자리에 허가도 받지 않고 일부 싣는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하루키인가 지랄인가를 왜 그리 넙죽넙죽 받아먹고 흉내를 내는지 모르겠다. 문장은 온통 그의 어투 아니면 베껴먹는 식이었다. 소설은 그럭저럭 재미있다. 문제는 소설이 자꾸 진부해져서 시궁창에 들러붙은 이끼처럼 썩어간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깨어 있는 문인들은 살아 있는 소설과 시를 발표하지만, 세태는 자꾸만 재미만 추구하다 보니 그마저도 힘겨워 보였다.

 

  (……)

 

  명예를 위해 시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유행하는 문화센터에 등록도 해야 한다. 아니면 잡지사 사장이나 편집장에게 잘 보여 시 서너 편을 갖다 준다. 그러면 편집위원에게 인사해야 된다며 돈을 준비하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면 곧바로 시를 손질하고 커다란 사진을 실어 신인상 운운하고 대문짝만 하게 자릴 잡아준다. 이제 인사를 해야 할 차례다. 식사 대접으로 수십만 원을 주고 이어 잡지를―최소한 한 권에 1만 원이다―200여 권 이상 사준다. 돈으로 계산하면 200만 원이다. 이어 신인상을 받았다고 파티를 한다. 이때도 잡지를 100여 권 이상 사준다. 허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길게는 6개월에서 짧게는 4개월 정도 지나면 특집이라 해서 다음 잡지에 시(물론 고쳐주고 분칠을 한다)와 화보로 도배를 한다. 인사는 돈으로 한다. 200에서 300만 원 정도다.

 

  (……)

 

  그렇다면 문학상 제도는 어떤가. 이름 있는 상을 주는 단체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눠먹기다. 지난해는 네가 탔으니 올해는 내가 타자 식이다. 순번제도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노병은 영원하다고 맥아더가 말했지만 문학상은 노병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김 시인, 이 시인, 박 시인 하는 식이다. 세상에 제일로 아름다운 게 나눔이지만 이 나눔은 추악한 나눔이다. 지난해에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수정해서 다시 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것도 이름께나 있다는 문학상이 그렇다. 그러니 다른 상은 물어 뭐하랴?

 

  한때 소설 작단에서는 표절 시비가 횡행한 적이 있다. 모모 소설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미시마 유키오 등이 쓴 소설의 일부를 표절하거나 문체를 흉내냈다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슬픈 일이다.

 

  문예지들이 신인 등용을 하면서 거래를 일삼아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쓴 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문예지의 이름이 밝혀져야 하고, 문단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이다. 나눠 먹기식의 문학상 또한 우리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이다. 송점수 씨의 글은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우리 문단의 어두운 부분을 덮어두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낸 데 대해서는 경의의 뜻을 표하고 싶다. 이 글만 보면 우리 시문학은 100주년을 앞둔 지금이 최대의 위기임을 알 수 있다. 외부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폐습 때문이다. 그 질환의 진원지는 문예지다. 문예지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고 있기에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일까.

 

  3. 문예지 등단제도의 문제점

 

  문예지를 통한 등단이 지금처럼 문제가 된 적이 또 있었던가. 일제 강점기 때의 『문장』과 『인문평론』은 이른바 ‘추천’이라는 제도를 정착시켰는데 모르긴 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 광복 이후 문예지의 명성은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이 이어갔는데 두 문예지가 행한 추천과 신인상이라는 신인 등단 제도에 대해서도 시비를 건 이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 두 월간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 더 큰 성채를 구축한 계간지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다. 확실하게 권력을 갖고 있던 두 월간지에 외국의 문학이론을 전공한 편집진이 강력하게 도전했기에 두 계간지는 더 큰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권력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비난하기 어려운 것이, 좋은 신인 발굴에 사력을 다해 우리 문학에 공헌한 바가 무척이나 컸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시인은 권지숙김남주김준태김정환이종욱하종오 등이었고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장영수김광규최석하안수환서원동최승자이성복김혜순박남철 등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70년대까지의 이야기다. 제5공화국 정권이 들어서 언론통폐합을 하는 와중에서 172개 정기간행물이 등록 취소되는데,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도 문을 닫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부정기간행물과 동인지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권력을 나눠 갖고자 많은 노력을 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80년대에 나타난 부정기간행물과 동인지는 등단 절차를 간소화하여 누구나 쉽게 등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은 부정적인 면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다른 면으로 본다면 등단의 절차며 등단지면이 중요시된 시대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계간지는 제6공화국 시절에 부활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계간지 『실천문학』의 약진과 『문학동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여 한때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2000년대인 지금 문예지는 완전히 군웅할거요 백가쟁명이다. 누구도 큰소리를 낼 수가 없다. 계간지의 특집이 특별하거나 신선도가 높을지라도 그것이 문단에 별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문제는 어느 문예지 할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반이 약한 문예지는 살아남기 위해 신인 배출을 수입원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것은 또 종종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제 살 깎기는 시가 점점 더 문학의 변방으로 내몰리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단을 하기 위해서 현재는 대개 다섯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 문예지 신인상 수상, 문예지 작품 게재, 자비 출판, 동인지 작품 게재. 제일 뒤의 두 가지는 인정을 거의 해주지 않으므로 앞의 세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택하게 된다. 신춘문예는 아직 선정 과정의 비리가 밖으로 드러난 바가 없어 많은 시인 지망생이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신춘문예 당선자는 지면 확보가 어려워 지속적인 작품 활동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문예지에서는 정기적으로 신인을 배출하는데, 신인상 공모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에 전문을 실은 송점수 씨의 글은 문예지에 대한 일대 성토이다. 문예지가 문단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써놓았는데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할 내용이 아닌가 한다.

 

  월간이든 계간이든 한 해에 그 문예지가 배출한 시인이 5명이 넘을 때,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의심하기 이전에 그 문예지의 정직성을 의심하게 된다. 과연 문예지 편집자 및 심사위원과 등단자가 전혀 모르는 사이일까? 한 호에 대여섯 명의 등단자를 배출한 바 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격월간)은 심사위원이 각자 자기 이름을 걸고 신인을 뽑아주고 있으므로 예전의 추천제를 부활시킨 셈이다. 그런데 호당 너무 많은 시인을 배출하면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등단을 시켰으면 발표지면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할 텐데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다른 문예지에서는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신문사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불가능한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문단의 미아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한편 문예지가 폐간이 됨으로써 시인을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학과 비평』『문학정신』『한길문학』『문학과 의식』『라쁠륨』『동서문학』……. 이들 문예지가 배출한 시인․소설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다. 재등단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한쪽에서는 시인이 무더기로 배출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인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독자는 시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한국 문예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다음 7가지를 지적한 적이 있다.

 

  1) 우리 문예지는 대부분 예나 지금이나 동인지 체제이다.

  2) 편집위원이 장기 집권을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문예지의 편집위원이 상당수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3) 어느 문예지나 편집이 비슷비슷하고 판형도 대동소이하다.

  4) 원고료를 주지 않는 문예지가 너무 많다.

  5) 소설가 관리용 문예지가 있어 시인은 들러리를 선다.

  6) 쟁점이 없는 문예지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7) 문예지들마다 특집이 너무 빈약하다.

 

  3년이 지난 지금, 무엇 하나 개선된 점이 없다고 본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4. 인터넷이 죽이는 시와 시인

 

  작고한 유명 시인의 시 작품치고 인터넷 검색을 해 나오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생존해 있는 시인이라도 웬만큼 알려진 작품이면 인터넷에서 그 작품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시에 관심이 있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은 자작시를 사이트에 올리고 서로 평을 해주고 있다. 시인이 아마추어의 시를 평해주는 사이트도 많다. 유명한 작품에 대한 해설도 대입 수험생이 즐겨 보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문예지가 출간되면 곧바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 호의 시 전문이 오른다. 신문을 보면 매일 시가 한 수씩 실려 있고 그 작품은 그 신문 사이트에도 올라 있다. 시집도 발간 한 달이면 그 시집의 좋은 시를 상당수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생활 한복판으로 들어온 이후 시가 어느덧 언어의 연금술사가 만든 고고한 정신의 성채라는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고 가벼운 읽을거리로 전락해버렸다. 그래서 시집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이제 시란 ‘책’이라는 종이 묶음을 통해 유통되지 않고 인터넷 온라인상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활자를 통해 ‘찬찬히’ 음미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통해 ‘금방’ 보아버리는 것이다. 시대가 이렇게 변해버렸기에 시는 ‘깊이’를 버리고 ‘재미’에, ‘감동’을 버리고 ‘재치’에, ‘언어의 조탁’을 버리고 ‘말재간’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시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부수적으로 찾아온 현상은 장시나 서사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신문에 실리는 시의 길이는 지면상 대단히 짧기 때문에 짧은 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퍼지고 있다. 시란 이제 깊은 사상성을 지닐 필요가 없어졌고, ‘존재의 가벼움’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하게 되었다. 현대시의 생산(시인)→유통(출판업자, 문예지 편집자)→수용(독자)의 단계에서 출판업자나 문예지 편집자의 역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시가 생산되자마자 소비자에게 가는 직송 체제 구축에는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고, 앞으로 그 역할은 더욱 증대될 전망이다. 문예지-시인-독자가 행복한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룬 시대는 가버렸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결과가 너무나 슬프다. 시의 시대가 결코 저물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사람이 많은데, 90년대에 비해 위축된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출처 : 함시 복수초
글쓴이 : 김정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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