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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광주일보 시 당선작 당선 취소

가짜시인! 2013. 1. 5. 10:31

 

[2013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삼거리 점방 / 김승필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논두렁 / 이덕규

 

찰방찰방 물을 넣고

간들간들 어린모를 넣고 바글바글 올챙이 우렁이 소금쟁이 물거미 미꾸라지 풀뱀을 넣고   

온갖 잡초를 넣고 푸드덕, 물닭이며 논병아리며 뜸부기 알을 넣고

햇빛과 바람도 열댓 마씩 너울너울 끊어 넣고

무뚝뚝이 아버지를 넣고 올망졸망 온 동네 어른 아이 모두 복닥복닥 밀어 넣고

 

첨벙첨벙 휘휘 저어서 마시면,

 

맨땅에 절하듯

누대에 걸쳐 넙죽넙죽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린 생각들 길게 이어붙인

저 순하게 굽은 등짝에 걸터앉아

미끈유월, 그 물텀벙이 한 대접씩 후르륵 뚝딱 들이켜면

 

허옇게 부르튼 맨발들 갈퀴손가락들 건더기 째 꿀떡 꿀떡 넘어가겠다

 

<내일을 여는 작가>

<시향>2009. 봄호 

이덕규 시인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에 「揚水機」 외 네 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4년 제9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2003년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문학동네

2009년 <밥그릇 경전> 실천문학사
현재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음

 

 

[알립니다] 신춘문예 ‘시’ 당선 취소합니다
‘삼거리 점방’ 표절로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5783000048658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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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본보 신춘문예 시 부문 김승필씨의 ‘삼거리 점방’ 당선을 취소합니다. 이 작품은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 작품 표절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중복 응모나 작품의 표절이 밝혀질 경우에 당선이 취소됩니다’라는 본사 신춘문예 응모 요강에 따라 해당 작품의 당선을 취소합니다.

 

해당 작품 응모자도 ‘당선취소결정’을 수용했습니다. 광주일보 시 부문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박남준·김정란 시인도 “당선 취소 결정에 이견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두 심사위원의 판단은 광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신춘문예 응모작을 더욱 철저히 검증하겠습니다.
2013년 01월 11일(금) 00:00

 

 

2013 신춘문예 ‘시’ 표절 의견-김정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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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곤혹스럽다. 확신을 가지고 당선작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했는데, 표절 의혹이 제기되다니…. 우선 사과부터 전한다. 심사위원이 세상에 발표되는 모든 작품들을 꿰고 있지 못한 다음에야 어쩔 수 없이 실수도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수는 실수이니, 다른 핑계를 어찌 늘어놓겠는가. 민망하고 참담하다.

 

김승필의 작품 ‘삼거리 점방’과 이덕규의 ‘논두렁’을 꼼꼼히 비교한 결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표절이란 자구를 그대로 가져다 베끼는 것만이 표절이 아니다. 두 작품 사이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대목은 동사 “밀어넣고”와 “넣고”, “마시면”과 명사 “무뜩뚝이 아버지”, “후르르 뚝딱”이라는 의성어뿐이지만, 몇 자가 원작과 표절 의혹 작품에서 일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구를 베끼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창작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다. 두 작품은 시적 발상이 완전히 똑같다. ‘시적 발상이 완전한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비슷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문제가 되는 시적 발상은 비슷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못난 것들을 한데 비벼 한끼 물텀벙 먹듯이 먹는다’라는 발상도 똑같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을 밀어넣어 마신다는 설정까지 똑같다. 특히 “무뚝뚝이 아버지”를 밀어넣는다는 발상,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의 고집을 “먹어버림”으로써 오이디푸스적 상처를 극복한다는 심리적·시적 전략이 똑같다. 사람을 음식처럼 먹는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상상력이다. 그것이 우연히 겹쳐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욱이 두 작품은 의태어와 의성어를 특유의 토속적 호흡에 섞어 시의 리듬을 구성지게 만드는 외적 특징마저 똑같다. 역시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라고 해도, 표절은 표절이다. 나로서는 두 작품의 유사성이 전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매우 유감스럽다.

 

2013 신춘문예 ‘시’ 표절 의견-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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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절, 두어 번 아주 당혹스러운 문제에 부딪혔었다. 문득 영감처럼 떠오른 시의 한 구절이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였지? 밤새 시집을 들춰보며 찾아보았다. 그런 문장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어느 누구의 시에 그와 같은 표현이 발견되었다면 일찌감치 그 문장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을 끙끙거리며 안절부절 시집들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문장이 들어간 시마저도 포기해버린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으로 인해 살이 돋고 옷을 입혔기 때문이다.

 

어떤 강력한 인상이 뇌리에 박혀 무의식 속에 자리 잡히기도 한다. 진실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는 것이 비슷한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 신경처럼 뛰쳐나올 수도 있다. 모든 예술가, 시인이나 창작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느낌에 취하지 않겠는가.

 

올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미리 점검해보지 못한 좁은 안목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과 당선자에게 심려를 끼쳤음을 사과한다. 또한, 광주일보사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