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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과 사람』2023 가을호 시집 리뷰_정서희 시인 본문

2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2023, 걷는사람)/노을_보도 자료 및 시집 리뷰

계간 『문학과 사람』2023 가을호 시집 리뷰_정서희 시인

가짜시인! 2023. 9. 19. 13:00

 

권상진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 서평

 

내 귀에 걸어 놓고 간 뉘엿한 말들

 

정서희(시인)

 

 

상처 나고 부러진 말의 조각들

 

모리스 블랑쇼는 쓴다는 것은 시든 소설이든 언어의 매혹이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달콤하고도 서늘한 매혹에 빠져서 웃고 우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이란 얼마나 황홀하고도 애잔한 존재인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신선한 말의 모태를 찾아 모래바람 치는 사막에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권상진 시인은 2013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문학 사회에 나왔다. 2018년 첫 시집 󰡔눈물 이후󰡕를 출간하고 부끄럽고 두렵다고 소회를 밝히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한 번도 시의 한가운데에 가 닿아 본 적이 없다”(시인의 말)고 했다. 두 번째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에서도 자신을 가짜 시인이라고 적었다. ‘가짜진짜의 얼굴을 하고 활보하는 이 시대에 스스로를 가짜 시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시를 대하는 자세가 염결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소소한 불화와 상처들을 따스한 감성으로 매만지고 있다.

권상진 시인은 가능한 한 독자와 소통이 쉬운 시를 쓴다 문학 담론에 소통 같은 것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독자들이 읽지 않는 시를 무엇 때문에 쓰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이번 시집에는 특히 자기만의 말을 찾아 분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첫 시집 󰡔눈물 이후󰡕에서 보이던 감정 과잉을 덜어내고 사람살이의 고통과 상처를 깊은 사유와 감각을 통해 확장시키고 있다.

 

입에서 칼 한 자루 스윽 뽑혀 나왔다

날 끝을 허공에 빙빙 돌리다 나를 겨누더니

희번득한 빛이 우리의 간격을 두 동강 내며

순식간에 목을 향해 들어온다

방금 누군가를 해결하고 온 사람처럼

거친 숨소리가 삐딱한 자세로 칼등에 걸터앉는다

보기 드문 고수였다

입 안에 숫돌을 물고

날마다 자음과 모음을 갈고 있는지

일합만에 토막 나 버린 내 말은 바닥에 나뒹군다

끝내 등을 주지 않는 내게

칼은, 일방적이었지만

전의를 잃은 상대의 숨은 남겨 두는 자비를 지녔다

당신의 칼이 스르륵 칼집에 꽂히는 동안

나는 부러진 말의 조각들을 줍는다

당신에게 닿지 못한 토막 난 마디들을 이어 붙여

문장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나는 조목조목 아프다

 

- 고수전문

 

시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구사한 시 고수는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힌 경험을 포착하여 쓴 시로 읽힌다. 시 속 화자는 일합만에 토막 나 버린 내 말은 바닥에 나뒹군다고 표현한다. 단 한 번 칼날의 마주침으로 결판이 난 안타까운 상황이다. “당신의 칼이 스르륵 칼집에 꽂히는 동안시적 화자는 슬픈 마음으로 부러진 말의 조각을 줍는다. 시인은 상처 난 말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문장이 완성될 때마다 조목조목 아플 수밖에 없다.

뜻겹침이란 측면에서 이 시를 살펴보면, “입에서 뽑혀 나온 칼 한 자루는 시인이 찾는 한마디로도 볼 수 있다. “방금 누군가를 해결하고 온 사람처럼칼 등 위에 당당하게 앉은 숨소리, 말을 다루는 자는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끝을 보듯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필력을 꿈꾼다. 시인은 입 안에 숫돌을 물고/ 날마다 자음과 모음을 갈고 있는자들이다. 변경 불가능하고 적확한 언어를 찾기 위해서 돌을 쪼고 깨고 다듬는 말의 석수장인 것이다.

성윤석 시인은 시집의 추천사에서 권상진의 시에는 문장으로 대상을 선명하게 파악하려는 시선이 있는데 그 시선은 인간의 삶에 대한 사유와 결부되어 있어서 언제나 신선한 인식을 선보인다고 했다.

시인은 시의 재료를 술집, 골목, 식당, 장터 등에서 구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곧 시다. 그래서 시가 현장감이 있고 구체적이며 감동이 있다.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에 나오는 시인의 말을 살펴보면, “돌이켜보니 가장 진절머리 나는 것도 눈물나게 그리운 것도 결국엔 사람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가장 어려운 대상이지만, 그 사람이 자신을 살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구석구석에서 묻어난다. “어느 날 네가 내 귀에 걸어 놓고 간/ 뉘엿한 말이었네”(뉘엿한 말)라는 시는 오래도록 화자의 귀를 노을처럼 물들이는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또한 시적 화자의 어조가 잔잔하고 나직하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여운이 길다. 생일날 미역국이 끓고 있는 싱크대 위에/ 안개 한 근을 툭 던지는 화자에게 생활이 우선인 아내는 꽃지랄 떨고 있네라고 응수하는 시 꽃지랄은 막말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지극한 부부간의 사랑이다. 진절머리 나는 사람,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대상도 물론 없지 않다. 오늘은 기분이 좀 쓸쓸해서 위로의 대상을 만나고 싶은데 양 볼 가득 뾰족한 언어들을 삐죽이며”(도형들) 심술보 가득한 사람이 온다.

 

상처라는 말보다는

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

 

마음에, 누가 허락도 없이

집 한 채 지어 놓고 간 날은

종일 그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홀로 아득해진다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몇 번이고 나는,

나를 고쳐 짓는다

 

- 흠이라는 집전문

 

잠시 접어 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 접는다는 것부분

 

흠이라는 집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상처는 흠집을 만든다. 유홍준 시인은 흉터외부에서 열지 못하는 뚜껑이요, ’밀실이라고 표현했다. 흉터는 누가 준 것이든 아니면 내가 실수로 만든 것이든 결국 내 몫이다. 상처 부위가 시나브로 회복되고 진물이 마르고 딱지가 앉더라도 흉터는 남아서 얼룩처럼 오랜 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마음에, 누가 허락도 없이” “집 한 채 지어 놓고 간 날은” “몇 날 며칠 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나를 고쳐 짓는다고 썼다. 상처 입은 자아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도 결국 . 그래서 흠이라는 집은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 나오듯이 지난밤 태풍을 홀로 이겨낸 집처럼 힘든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아늑한 흉터의 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접는다는 것역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접는 행위를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섣불리 선을 긋고 단정 짓거나 극단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의미다. 시집의 해설을 쓴 정훈 평론가는 이 포개짐의 의미를 사랑의 관계학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사유로 보았다. 시인은 유달리 섬세하고 미세한 감각을 가진 존재이다. 그래서 상처에 더욱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울퉁불퉁 파인 흠집이 포근하고 아늑한 집이 될 때까지 를 쳐서 다듬고 제련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노역이다.

 

별까지 걸어서 가다

 

우리의 삶은 일회적이다. 영원을 살 것처럼 미래를 계획하고 재화를 모으지만 어느 한순간 병이 들고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은 무()의 세계로 환원된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유일회적이기 때문에 빛나고 숭고하다.

 

길가 쉼터에 차를 세우자

코스모스 화단에 걸터앉던 엄마

온통 붉은 서쪽을 바라본다

 

노을 쪽에서 온 사람처럼

노을 쪽으로 가는 이처럼

 

노을처럼

사위어 가는 당신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러쥔 옷섶에서 구름의 멍울들이 잡히고

눈 뜨면 그 속에 가득한 별들

 

- 배웅부분

 

인용되지 않은 시의 앞부분을 옮겨보면, 지금 시적 화자는 병든 엄마의 진료소견서를 받아 들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화단에 걸터앉은 엄마가 붉은 서쪽을 바라본다. 그런 엄마가 노을 쪽에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노을을 향해 가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다. 누구든지 처음에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니, 가는 방향은 결국 노을 쪽이다. “끼니때가 되면 밥 한술을 뜬다 입 안으로 별을 털어 넣는다/ 물 한 모금에 먼 우주로 흘러가는 별들/ 하늘에는 밤마다 백색왜성이 뜬다/ 어제보다 어둡고 멀어지는”(백색왜성)이 시편에서도 노을 지는 쪽에 서 있는 슬픈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긴 투병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본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의 비애가 느껴진다. “어둑한 CT 사진 속에서 환하게 번져가는 성운” “우주가 점점 어두워져 가네요라는 의사의 진단이 사형선고나 최후통첩과도 같아서 곱씹을수록 통증이 느껴진다.

 

염장이가 그를 슬픔과 함께 단단히 묶고

눈물이 새 나가지 않도록 오동나무 관으로 경계를 두르는 동안

죽음을 빙 둘러선 사람들은

그렇게 흘러든 어떤 구름에 대해 증언하거나

자신의 몸에 눈금을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막잔을 비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일어설 때

코끝까지 차오른 눈물에 그가 술잔처럼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바깥에 서 있었다

울고 있었지만 아무도 당신의 술잔에 채워 준 구름을

마시지 않았다

한 이틀 슬픔이 속속들이 다녀가고 마지막 날엔

잘게 부서진 눈물이 항아리에 고였다

주목나무 아래 그를 뿌려 두고

남은 이들이 출렁거리며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 당신의 바깥부분

 

환승역-요양병원에서에서 내린 사람은 새로운 역을 향해서 가야 한다. 죽음이 날개를 펼쳐 사람들을 모으고 불길한 구름에 대해서 증언한다. 아주 잠시 동안 진지해진 사람들이 눈물 젖은 눈으로 캄캄한 바깥을 응시한다. 여기서 안과 바깥은 가시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깥은 인간의 의식이 사유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잠시 사람들의 의식 속에 머물다가 금세 연기처럼 사라진다. 침묵 속에서 어두운 밤, 즉 죽음이 닥쳐왔을 때, 불안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영역인 바깥을 바라보게 한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이 불안은 세계를 무()로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눈금을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그들은 울고 있었지만 아무도 당신의 술잔에 채워 준 구름을 마시지 않았다그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바깥에 서 있었다여기서 바깥역시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그 순간이 아닐까?

이외에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독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빈방이라는 악몽, 한 사람의 생애를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묘사한 장편, 폐업 이후 좁혀져 오는 미행을 따돌리지 못하고옥상에서 몸을 던진 사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타조 증후군등 죽음에 대한 사유가 곳곳에 놓여있다.

 

어디에라도 곁들여지고 싶은 마음

 

아무리 힘든 순간도 시간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부조리가 성큼성큼 불의한 세계로 우리를 몰고 간다.

 

엎드린 채 김수영을 소리 내어 읽는다

주문 걸리듯 다시 혁명을 꿈꾸며 스크럼을 짜는

머리카락 먼지 던져진 양말

이를테면 나 아닌 것들

열 번도 넘게 김수영을 읽고 한 번도

그것들과 연대하지 못하는 나

 

- 김수영을 읽는 저녁부분

 

시적 화자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김수영의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그러나 그것들과 연대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지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장검처럼 김수영을 뽑아들었으나 문제는 비어 가는 쌀독, 그 먹이 때문에절망하고 있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 손으로 간신히 잡고 있는 밥줄을 포기할 수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린 디스코 팡팡, 맞벌이 아내가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주려고 준비한 보름달 빵이 놓인 보름달이 뜨는 식탁, 그리고 다섯 평 원룸에 삼대가 사는 테트리스등은 가난한 이웃들의 생존 현장을 형상화했다. 겉절이에서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한 무더기의 일당쟁이들이 갓 담은 겉절이를 앞에 놓고 반으로 찢어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가 치대는 대로 몸을 맡겼다가/ 국수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어딘가에 몸을 기대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다. “아직 어디에라도 곁들여지고 싶은 절여진 겉들이라는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조르쥬 아감벤은 시인을 동시대인으로 규정하고 시인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데 모든 시대는 동시대성을 체험하는 자들에게는 어둠이라고 보았다. 1󰡔눈물 이후󰡕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집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어두운 현실이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시인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인다. “열세 번의 거처를 옮기며 초원을 찾아서 방황하는 유목민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종족”(교차로)인 이 땅의 중심부에서 배제되고 밀려난 서발턴(Subaltern)이 그의 시의 화두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기분들/ 야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언어들”(술값은 내가 냈으니)이 매혹적이다. “몰입이라고 부르던 행간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직 읽을 수 없는 나라는 문장”(행간)이 고통스러워도 총총 떠 있는 별의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씩씩하게 걸어가기를 응원하고 싶다.

 

 

 

 

 

정서희

1966년 충남 서산 출생,

창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2020󰡔문학과 사람󰡕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마을로 29, 동아아파트 206503(51772)

010 8545 1965, idea44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