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시간의 등 / 윤준경

가짜시인! 2013. 2. 22. 18:38

시간의 등

 

          윤준경

 

 

내 힘으로 걷지 않았다

 

인생을 위해 내가

설사 수고한 것이 있다해도 헛수고였을 뿐,

나 인생에게 술 한 잔 사 준 적 없이*

인생은 나를 견뎌 주었다

 

섣달 초열흘, 어머니는 나를 윗목으로 밀어내셨지만

살려달라고 우는 나에게

이내 젖을 물리셨다

전쟁은 나를 버리라고 애원했지만

용케도 나는 버려지지 않았다

 

한 남자의 등에 나를 업히시던 날

어머니는 속으로 우셨다

 

삶은 언제나 미지수였다

현실의 옆칸은 늘 비어있고

예측할 수 없는 곡조가

인생을 밀고 당겼다

 

내 힘으로 걸을 새 없이

시간이 나를 업고 달렸다

내일에 대해서는 말해 준 적 없이

 

 

 

*정호승 시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 주지 않았다'를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