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이 좁아서 / 복효근
우산이 좁아서
복효근
왼쪽에 내가
오른쪽엔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내 왼쪽 어깨가 더 젖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가짜시인의 단상
'오른쪽 어깨'란 제목을 붙여 시 한 편을 시도한지 일 년 반. 몇 번을 쓰고 지웠으나 그때마다 너무 가벼운 듯 하고, 마음 속엣 것을 시원히 다 말하지 못한 듯하여 맘에 차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쓸 수 없게 된 것 같다.
발상이 똑같다. 말하고자 하는 것도 엇비슷하다. 우산을 함께 쓰고 가면서 왼쪽에 서있는 그녀 쪽으로 슬쩍슬쩍 우산을 기울이는 나, 그리고 마른 그녀 대신 젖어 오는 나의 오른쪽 어깨.... 그런 나의 마음을 참 예쁘게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에 잠겨 있었나 보다. 이제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후련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좀 더 찡 한 시가, 좀 더 아리한 시가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가 복효근 시인 이기에 내 시를 뺏어간 것에 대하여 나는 용서하고(이건 순전히 혼자만의 생각임) 그가 복효근 시인 이기에 뭔가 좀 부족한 듯한 마음이 머무는 것에 대하여 아쉽다. 하마터면 표절 의혹을 당할 뻔 했고, 적어도 아류가 될 뻔 했다. 아쉽다, 그동안 골몰했던 내 시간이.하지만 어쩌랴...내 그릇이 이게 다인 것을.
요즘 경주는 표절 때문에 시끄럽다. 내가 먼저 '오른쪽 어깨'를 탈고 했다면 복효근 시인에게도 표절을 운운했을까? 적어도 네 행 정도는 거의 똑같고 진술 방식이나 전체적인 어조가 거의 비슷하다, 내가 습작 노트에 남겨 놓은 흔적과....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