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돌 / 나희덕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있네
그러면 내 스무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화상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을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가짜시인의 단상
그 돌은 시간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쓰고나면 다시 채워지고 버리고 나면 다시 채워지는.
나도 이십 대가 있었고 돌 하나 쥐고 살았다.
어느 순간 던졌다고 생각했던 그 돌이 얼마 후 다시 손에 쥐어 있었고
나는 다시 던졌으나 내 손은 다시 돌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 그 돌을 가끔 베고 눕거나 대화를 걸어 보기도 하면서 그냥 곁에 두고 지내는 건, 시인이나 나나 마찬가지.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